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스 크렙스 (문단 편집) ====== 물을 이용하여 탈출하라 ====== 모델이 팔레즈 포위망의 독일군을 최대한 탈출시키고 서부전선 총사령관에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가 복귀한 후인 9월 초에 크렙스도 서부전선으로 전임되면서 B집단군 참모장으로 모델을 또다시 보좌하게 된다. 9월 중순에 벌어지는 [[마켓 가든 작전]]에서의 독일군 승리에는 15군의 전력 보존도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데, 이러한 15군의 전력 보존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 크렙스였다. 히틀러 암살 미수 혐의로 게슈타포에 연행된 한스 슈파이델의 후임으로 갑작스레 B집단군 참모장에 임명된지 고작 3일 만이었던 크렙스는 9월 5일, 총통 사령부의 발터 바를리몬트 장군의 전화를 받았다. "총통께서는 포위된 15군의 탈출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있으니 차라리 안트베르펜 항구 방면으로 돌파해 나가도록." 당시 15군 사령관 폰 창엔 장군 또한 스헬데 강 건너편으로의 퇴각 대신 돌파 작전을 염두에 두고 세부 계획까지 전부 세워두었다. B집단군 사령관 모델 원수는 돌파와 스헬데 강 건너편으로 퇴각 중 결단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델에게서 최상의 판단을 이끌어낸 것은 크렙스였다. 크렙스는 바를리몬트가 재차 전한 '''총통의 명령을 괘념치 않고''' 오히려 구체적인 스헬데 강 도하 작전을 구상, 15군에 '물을 이용하여 탈출하라'고 명령한 뒤 9월 6일에 네덜란드에 위치한 해군 사령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15군의 생사는 해군에 달렸으니 스헬데 강을 통행하는 선박을 최대한 확보할 것'을 촉구하였다. 해군의 노련한 지휘 하에 소규모 제대 별로 진행된 도하 작전은 큰 사고 없이 순조롭게 9월 9일에 완료되었고, 분명 포위되었던 15군이 무사히 퇴각한 것은 서부전선 총사령부조차 깜짝 놀란[* 《Rückzug: The German Retreat from France, 1944》 P.217] 육해군 합동 작전의 성과였다. 서부전선에서 장기간 종군했던 폰 창엔을 비롯한 서부전선 총사령부 장교들보다, 계속 동부전선에 있다가 불과 사흘 전에 도착한 크렙스의 분석과 결단이 제일 정확했는데 크렙스의 대표적 장점이 그 어떤 새로운 상황도 빠르게 파악해내는 '''직관적인 판단력'''이라고 한다.[* 《US Army Foreign Military Studies, 1945-1961》 A-925 VIII. General Kreb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